안녕하세요 영화 읽어주는 엄마, 영읽엄입니다.
오늘은 이 시대의 위대한 화가로 불리우는 빈센트 반 고흐의 3번째 이야기인데요, 첫번째는 고흐의 전기영화 “열정의 랩소디”를 통해 고흐가 화가로 살았던 삶에 대해서 알아보았고요, 두번째는 고흐에게 바친 헌정 영화 ‘러빙유’를 소개하면서 고흐가 진짜로 자살을 하였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지요. 그리고 오늘은 너무나 유명한 두 거장 고흐와 고갱의 레전드 이야기! 고흐의 비극적인 귀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해요.
고흐의 비극적인 귀의 사건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 중에는 고흐가 고갱과의 다툼 뒤에 자신의 광기에 못 이겨 스스로 귀를 잘랐다, 또 투우에서는 투우사가 소의 귀를 자르는 게 승리의 표시인데,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는 행위를 함으로써 고갱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승리의 표시로 잘랐다, 그리고 좀 어거지 같긴 한데요, 어떤 사람들은 고흐가 고갱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귀를 잘랐다고도 하네요.
그런데 2008년 독일에서 출판이 된 “반 고흐의 귀: 폴 고갱과 침묵의 약속.( In Van Gogh's Ear: Paul Gauguin and the Pact of Silence; 반 고흐의 귀: 폴 고갱과 침묵의 약속, 2009년 독일에서 출판 by Hans Kaufmann and Rita Wildegans)” 이라는 책에서 두명의 저자는 10여년간의 여러가지 조사와 연구후에 고흐가 귀를 자르지 않았고 고갱이 잘랐다는, 기존에 알려져 있던 사실을 뒤집는 완전 새로운 설을 주장하였지요. 물론 이런 주장을 한 작가들은 고갱이 일부러 그랬는지, 아니면 고흐의 광기에 대항하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랬는지는 잘 모른다고 하는데요, 중요한 건 고갱이 펜싱을 매우 잘 하였고 그래서 항상 펜싱 칼을 가지고 다니던 고갱이 고흐와의 다툼 중에 고흐의 귀를 잘랐다는 거지요. 저는 그 내용을 보는 순간 “아, 맞다!!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고갱은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주식중개인을 하였지만, 그 이전의 젊은 시절에는 배를 타는 선원이었기에 매우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제가 위의 주장을 바탕으로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시작은 이래요. 파리의 복잡함을 떠나 아를에 정착한 고흐는 그 전원생활에 매우 만족하지요.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좋아하는 고갱이 경제적으로 힘들고 병까지 걸려 있음을 편지로 알게 되고, 그래서 평소에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 서로 도와주며 같이 작업활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화가 공동체’를 꿈꾸었던 고흐는 자신의 노란집으로 고갱을 포함한 다른 화가들에게 아를로 모여 같이 그림을 그리자고 편지를 보내지요. 그러나 다른 화가들은 반응이 없었고 그나마 고흐의 동생 테오가 빚을 갚아주고 생활비를 대준다는 이유로, 즉 돈 때문에 할 수없이 유일하게 고갱만 아를로 오지요. 그러나 이 두 거장의 만남은 너무나 다른 성격과 관점의 차이로 인하여 잦은 다툼을 만들었고, 그러다가 서양의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23일, 드디어 그 유명한 고흐의 귀사건이 터집니다! 근데 시기가 참 절묘하지 않나요?? 가족들이 다 모이는 서양의 가장 큰 명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고흐나 고갱 둘 다 마음이 편치 않았을 건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지요. 당시 고흐의 상태는 자신의 재정을 대주던 남동생 테오가 약혼을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미래에 대해 불안감이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바로 그 전날 고갱이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라는 작품에서 작업하는 고흐의 모습을 그렸는데, 고흐를 무능하고 늙고 기쁨도 열정도 없어 보이는 그런 모습으로 그려 놓은 거예요. 그때 고흐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틀림없이 나 자신의 초상이다. 그러나 정신이상이 된 나다”라고 소리치며 매우 분노했다고 하는데요, 결국 그 분노가 커다란 다툼으로 이어지는 시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하지요.
반면에 고갱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버리고 나왔지만 한때는 사랑하는 자녀와 아내가 있는 가장이었고~ 누구나 명절에는 가족이 그립고 왠지 멀리 혼자 있으면 누가 무어라 안 해도 짜증이 오르지 않나요? 기분이 안 좋아서 조용히 있고 싶은데, 또 불안감에 휩싸인 고흐가 계속 머물건 지 아니면 떠날 건지 확실히 해달라고 몰아 부치면서 언쟁이 시작되고, 안 그래도 짜증이 나 있던 고갱은 떠나겠다고 고함을 치지요. 그 때 고흐는 면도칼을 손에 쥐고 떠나려는 고갱을 죽이려고 했다고 하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은 안 하고요, 협박을 하지 않았을까 해요. 그런데 그 미친 거 같은 고흐의 정신적 상황에 화가 잔뜩 난 다혈질 고갱은 순간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펜싱 칼로 고흐의 귀를 자릅니다. 이성적이기 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있는 고흐에게 ‘니가 못하면 내가 해준다’ 뭐 이런 거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목숨에 위협을 느낀 고갱이 본능적으로 펜싱 칼로 자신을 방어했을 수도 있구요. 순간에 일어난 사건이후 당황한 고갱은 집을 나가고, 잘린 귀를 주워들은 고흐는 노란집에서 한 300m정도 떨어져 있는 매춘부들이 있는 집(brothel)으로 가서, 평소 알고 있던 그곳의 하녀(영어로는 maid 또는 cleaner라고 되어있네요)에게 잘린 귀를 건네고 돌아와 침대에 쓰러지지요. 일반적으로는 고흐가 잘린 귀를 레이첼이라는 매춘부에게 주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많은 조사에 의하면 고흐에게 직접 잘린 귀를 받은 사람은 그곳의 나이 어린 하녀였다고 하네요. 그런데 저는 이부분이 가장 상상이 어려워요. 도대체, 왜?? 고흐는 잘려 나간 귀를 다른 사람에게 주었을까요? 아무튼 이 엄청난 사건이후 집을 나갔던 고갱은 바로 이튿날 아를을 급히 떠났고, 고흐는 정신병자로 몰리면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지요. 여기까지가 그 유명한 고흐의 비극적인 귀 사건입니다.
27이라는 나이에 화가가 되어 37에 죽은 고흐, 35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서서 가족과도 헤어지고 결국에는 먼 타향에서 55살이라는 나이에 가난, 질병, 외로움으로 비참하게 죽은 고갱(Paul Gauguin 1848~1903)….. 참으로 시대를 앞서 갔던 이 두 거장은 비슷한 처지로서 동질감과 동시에, 너무나 다른 성격차이에 의해 애증(愛憎)의 관계였다고도 말하지요. 참고로 고갱의 삶도 참~ 드라마틱해요. 그래서 영국작가 서머셋 모음(W. Somerset Maugham, 1874~1965)은 고갱의 삶에 영감을 얻어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1919)”라는 소설을 썼고, 그 소설의 엄청난 인기는 “고갱이라는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팽개치고 화가가 되어 남태평양으로 떠난 금융인이다”라고 오해가 되기도 하는데요,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인지라 실존인물 폴 고갱의 이야기와는 많은 차이점이 있으니 그 점은 유의하시고 읽어야 하지요.
자 이제부터 엄마의 생각입니다.
이 유명한 고흐 귀사건에 대해서 가장 official한, 즉 공식적인 이야기는 고흐가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잘랐다는 건데요, 저는 아니라고 믿고 싶어요. 고흐는 작품에 대한 지나친 몰입과 열정으로 인하여 어느 순간 한계를 넘어서는 이상한 행동을 했을 지는 몰라도 절대 그는 미친 사람이 아니었고 누구를 해치거나 자신을 해칠 그런 심성을 가진 사람이 더욱 더 아니지요. 그러나 고갱에 대해 조사를 해보면 고갱의 피에는 매우 급한 성격의 유전자가 있어요. 고갱의 어머니의 어머니, 즉 외할머니라는 분이 정말로 굉장한 분이셨더라구요. 스페인계의 외할머니는 여류작가였고 프랑스 여성 운동의 선구자역할을 하였으며 자신의 혈통에 대한 강한 긍지와 몹시 과격하게 불타는 듯한 성미를 가졌다고 하네요.
또 어느 책에서 보니 “고갱이 고흐를 바이블에 불탄 인간이라고 했다는데, 그렇게 이야기하면 고갱은 원시의 태양에 불탄 인간이다”라는 표현이 있더라구요(*금성출판사 현대세계미술전집 4권) 저는 이문장이 두 사람의 극단적인 성격을 잘 표현해 준다고 봐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근거로는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즉 고갱과 나)는 다시는 그 일에 대해 얘기하지 않기로 합의 보았다(Basing their theory on passages in Van Gogh's letters to his brother, Theo, they suggest that the two artists agreed never to mention the matter further.)”라고 쓴 부분과 "고갱이 아직은 총이나 다른 위험한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아 다행이다(Luckily Gauguin ... is not yet armed with machine guns and other dangerous war weapons)." 라고 썼다고 하네요(반 고흐의 귀: 폴 고갱과 침묵의 약속, 2009년).
이런 여러가지 정황을 볼 때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를 배려하였던 “Bible 즉, 성경적”이었던 고흐는 고갱이 감옥에 가는 것도 원하지 않았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와의 우정을 생각하여 책의 제목처럼 “폴 고갱과 침묵의 약속”을 했을 거라는 이야기지요. 저는 이 주장이 매우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고흐의 그림은 미치광이의 그림이 아니라 예언자의 그것이다” 라고 누군가(베르나르 드리바르)가 말을 했다고 하네요. 정말 매우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해요. 저는 가수는 노래로, 배우는 연기로, 화가는 그림으로 우리에게 ‘진실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데요, 고흐의 작품들은 우리들에게 그의 내면을 볼 수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해 주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그의 치열하였지만 순수하였던 고흐의 삶을 알게 되면서 그의 작품에 눈을 뜨게 되고, 또 반대로 고흐의 작품에 의해 그의 삶에 대한 진실성을 알게 되지요. 돈 맥클린이 불렀던 ‘빈센트’ 라는 노래의 한 구절처럼~~한 예술가의 정성스러운 손길에서, 우리 인생의 고단한 삶이 잠시나마, 마치 제가 그랬던 것처럼, 위로 받고 행복을 느끼길 바라면서 모두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 위 내용은 유투브 "영읽엄(영화 읽어주는 엄마)" 채널에서 제 목소리로 라디오처럼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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